제이 엘리엇 애플 전(前) 수석부사장은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잡스 없는 애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제의 조찬세미나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갤럭시S’)이 나왔을 때 ‘아이폰’과 매우 닮아 잡스나 나나 매우 화를 냈고 분노했다. 삼성은 하드웨어적으로 매우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더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엇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삼성전자가 애플 제품 디자인을 모방한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소송은) 불행한 일이고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힘들지만 삼성과 애플의 관계는 특허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에는 돈독한 관계였던 만큼 경쟁을 넘어선 관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이 TV 등에서 훌륭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삼성이란 브랜드보다는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며 “삼성이 좀더 제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왼손잡이 잡스가 “나의 왼팔”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믿고 기댄 정신적 멘토라고 평가받는 엘리엇 전 부사장은 이날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를 통합해 ‘디지털 허브’를 노리고 있는 애플의 전략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삼성은 물론 소니와 델 같은 기업들도 자체 소프트웨어(OS)를 보유한 애플과 달리 하드웨어만 갖고 세계 시장에서 싸우고 있어 제품을 절반만 만드는 것”이라며 “이들 회사들이 왜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HW와 SW를 통합하는 것이야말로여타 경쟁사들과 같은 개수의 제품을 파는 애플이 5배 정도 높은 수익을 거두는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삼성 제품을 두고 “삼성 광고를 보면 하드웨어만 얘기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그 안(하드웨어)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들어있어 결국 한 제품에 두 개의 주체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엘리엇 전 부사장은 잡스가 없는 애플의 미래에 대해 “애플의 많은 팀은 잡스의 비전과 그의 장기적인 제품개발 로드맵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그들은 훌륭한 팀과 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몇 가지만 주의하면 혁신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잡스가 팀 쿡 CEO를 중심으로 디자인, 기술, 마케팅, 판매까지 애플을 이끌 후임팀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애플은 항상 2~3년의 로드맵을 갖고 있으며 향후 5년간은 혁신 기업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의 차기 제품은 TV가 될 것으로도 전망했다. 엘리엇 전 부사장은 “애플의 차기 도전은 TV 시장이 될 것”이라며 “모든 것은 화면(스크린)으로 종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사람들이 어떤 화면으로 정보를 보게 할 지가 관건”이라며 “잡스는 TV까지 보여주지 못했지만 결국 애플이 정복할 화면은 TV”라고 강조했다.

그는 애플 기기 및 서비스의 폐쇄성에 대해서는 “나 역시 ‘앱스토어’에서 전자책을 팔았을 때 애플이 30% 수익을 가져가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결국 앱스토어는 성공했고 디지털콘텐츠의 유통이 어떻게 변하는지 산업계가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폐쇄적인) 애플 정책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200여 명의 국내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기업이 변화하려면 CEO 자신부터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며 “CEO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과 그들이 제품의 가치에 눈뜨게 하는 위대한 브랜딩 사이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엘리엇은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캠페인을 예로 들며 “잡스는 항상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단순화시켰다”며 “기업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CEO”라며 리더십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엘리엇 전 부사장은 잡스의 죽음 당시의 충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당시 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차를 세워야만 했다”며 “잡스는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고,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자신만의 비전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부 맘에 안드는 행동이나 개인적으로는 비사회적인 행동도 많이 했고 아니다 싶을때는 조언도 해줬다”면서도 “사람들하고 교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고 개인적인 추억을 토로했다

엘리엇 부사장은 또 “잡스의 가장 큰 유산은 그가 세상에 남긴 위대한 제품과 그의 죽음에 대해 애플 소비자들이 그를 추모하는 모습”이라며 “이는 미래 소비자들이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꿰뚫는 혁신적인 통찰력과 소비자를 새로운 디지털 정보의 세계로 이끄는 그의 창의적인 제품개발 능력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엘리엇 CEO는 “한국은 위계질서가 강한 편”이라며 “젊은이들이 창의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이런 구조를 무너뜨리는 한편, 각종 세미나 등 아이디어 공유의 장을 시스템으로 만들어 젊은이들의 관심을 유발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